남극에서의 Season's Greetings!!

2020. 4. 9. 06:05Life/2020

※ Season's Greetings : 연말·연시 인사말, 통상적으로 크리스마스 기간부터 새해 시작기간에 주고 받는 인사말이다.

 

 2020년을 맞이하고 벌써 네 번째 달이 찾아왔는데, 무슨 연말·연초 이야기를 다루는지 의아할 수 있지만, 기억이 희미해지기 전에 정리하고자 하여 오늘은 내 생에 가장 특별했던 남극에서의 생일과 새해맞이를 담고자 한다. 작년 4월, 대학원 선배의 남극 과학기지에서 통신 엔지니어를 뽑는다는 이야기를 듣고, 설레는 마음으로 서류 전형부터 필기/실기 시험, 면접 전형을 잘 준비한 덕에 그토록 그리던 남극에 올 수 있게 되었다.

 

칠레 공군 Frei Base에서 바라본 맥스웰 베이

 

 2019년 12월 2일, 한국을 떠난 지 4일 만에 무사히 예정된 일정에 맞추어 도착할 수 있었다. (시간대가 바뀐 점을 고려하면 5일 만에 도착했다는 표현이 옳은 것 같다.) 처음 도착한 남극은 생각 외로 추웠다. 당시의 남반구는 여름이었고, 킹조지섬은 남극반도 끝자락에 위치해있기에 단순히 온도만 보고 따뜻할거라고 여긴 것은 정말 무지한 생각이었다. 매우 거센 바람으로 기지에 도착하기 전까지 바들바들 떨 수밖에 없었다.

 

 처음 2주는 시간이 정말 빠르게 흘렀다. 전 차대 통신 담당자에게 업무를 인계받고, 개인적인 업무파악과 각종 공동작업들로 시간 가는 새를 느낄 수 없었다. 특히, 남극 과학기지의 1년 생활중에 가장 힘들다는 정기 보급품에 대한 해상 하역작업도 진행되었다.

 

해상하역 작업한 갑작스런 강설로 인해 급하게 철수하는 중

 

 개인적인 생각으로 힘든 것보다는 우리 월동 연구대원들의 첫 공동작업으로 팀워크를 형성하고 유대감을 증대시키는 좋은 계기였다고 생각한다. 또한,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눈보라 휘몰아치는 남극바다 위에서 일을 하는 경험이 살면서 또다시 찾아오지는 않을 테니까 굉장히 가치 있고 의미 있는 경험이다. 5일간 이어졌던 하역작업을 마치고, 지난 13개월간 세종과학기지를 훌륭히 지켜준 32차 월동연구대원들을 보내고, 본격적으로 우리가 기지의 운영과 관리를 맡게 되었다.

 

2019 남극세종과학기지 크리스마스 트리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다 보니 또다시 2주의 시간은 금방 흘렀다.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내기 위해서 창고에서 먼지 쌓인 나무는 찾았으나, 꾸밀 소품들이 하나도 없어서 가능한 선에서 부랴부랴 만들었다. 탁구공에 락카칠을 해서 골드볼과 실버볼을 만들고, 색지를 각양각색으로 오려서 소원카드도 만들었다. 전기기술자분은 특기를 살려 릴레이를 활용하여 깜빡거리는 전구도 만들어주셨다. 힘겹게 트리를 꾸미고나서야 실감나지 않던 연말의 분위기가 느껴졌고, 곧 다가올 생일이 너무나 기다려지기 시작했다.

 

Good bye, 2019! BBQ Party

 

 부모님께 감사히 여기는 것 중 하나로 12월 31일에 나를 낳아주셨다는 점! 왜냐하면, 전 세계 어디를 가나 추억이 깃든 한 해를 보내고 설레는 새해를 맞이하는 축제의 분위기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국에서 생일날 술을 마시러 나가면 잔뜩 취한 옆 테이블 손님들이 생일을 축하한다며 술과 안주를 건네주기도 한다. 세종과학기지에서는 이날 바비큐 파티가 있었다. 아마도 동료 대원들 중에 내 생일파티가 가장 성대할 것이다. 셰프가 정성스레 준비해주신 다양한 종류의 바비큐를 즐기고, 회관에서 본격적인 생일파티가 진행되었다.

 

한국의 대기연구원이 필름카메라로 찍어준 생일파티 (필름감성을 위해 '97년도로 날짜를 넣었다.)

 

 기지 총무님께서 생일파티를 너무 성대히 준비해주셨다. 조금 부끄러운 탓에 현장의 사진은 올리지 못하겠는데 다양한 시각자료를 활용하여 매우 성대히 꾸며주셨다. (머리에 씌워진 왕관만 보아도....) 생일을 앞두고 월요일부터 어떻게 해야 사람들에게 새해를 즐겁게 해줄까 매우 많은 고민을 했었다. 고민의 결과는 텔레비전이었다.

 

TV화면

 

 이곳에서는 TV가 없다. 아니, TV는 있지만 방송서비스가 없다. 따라서, 한국의 방송과 TV광고, 연구소의 유튜브 콘텐츠를 짜집기하고, 카운트 다운을 위한 시계를 화면에 배치하였다. 현지 시간(UTC-3)으로 2020년 1월 1일에 맞추어 카운트다운 영상도 준비했다. 만드는 데에 오랜 시간을 투자한 것은 아니지만, 카운트다운이 다가올수록 사람들의 반응이 어떨지 조마조마 한 마음이었다. 정말 감사하게도 더욱 실감있게 새해를 맞이할 수 있었다며 즐거운 표정을 보여주어서, 이곳에 와서 가장 처음으로 뿌듯함을 느낄 수 있었다.

 

2020 새로운 시작, 남극세종과학기지

 

 카운트 다운을 마치고 새해맞이로 기지 내 전 인원의 단체사진 촬영이 있었는데 실내에서 계속 시간을 보낸 탓에 반바지를 입고 있던 상태 그대로 나오게 되어, 사진을 찍은 기억보다 추위가 더욱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그간 한국에서 새해를 맞이할 때는 무엇 때문인지 모를 우울함과 무기력함이 찾아오곤 했는데, 색다른 곳에서 맞이한 새해는 앞으로 일이 잘 풀릴 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다. 2021년은 다시 한국에서 맞이하게 될 텐데, 그날의 시점으로 지난 1년을 되돌아보았을 때 정말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시간이 될 수 있기를 노력하겠다는 다짐과 함께 남극 과학기지의 2020년 새해맞이 이야기를 마치겠다.

 

 

 오늘의 포스팅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지금까지 나의 이야기를 다루었으니, 남극 대륙의 새해 문화를 간단히 소개하고자 한다. 종각에서 울려 퍼지는 제야의 종소리(서울), 현란한 전광판들 사이로 떨어지는 크리스탈볼(뉴욕), 휘황찬란한 불꽃과 레이저로 뒤덮인 하늘(북경) 이처럼 세계 각기가 새해를 맞이하는 방법은 제각각인데, 남극만의 새해를 맞이하는 특별한 방법은 무엇일까? 바로, 남·북극 60여개의 기지 간에 Season's Greetings 축전을 주고받는 일이다. 우리 세종과학기지의 축전과 인상 깊었던 외국 기지의 축전을 네 개 정도만 공유할까 한다.

 

대한민국 남극 세종과학기지

 

 세종과학기지 명칭의 유래인 세종대왕(1397-1450)을 떠올리며, 조선 임금의 일상복인 곤룡포의 용무늬의 원형 보와 붉은 색을 사용하여 한국의 전통문화를 엿볼 수 있다. 내가 속해있는 33차 월동연구대의 단체 사진과 함께 새해의 행복과 소원성취를 빌었다.

 

호주 남극 모슨기지

 

호주 출신의 지질 탐험가인 모슨이 남극에서 거주했던 장소에 지어진 남극 모슨기지에서는, 구성원들의 단체 사진과 인사말로 장식하였다. 일상복에 소소한 크리스마스 분장으로 편안함을 느낄 수 있다.

 

영국 남극 시그니기지

 

 시그니기지 역시 구성원들의 단체 사진을 활용하였는데, 제각각 알록달록하고 이색적인 복장이 매우 인상적이다. 마치 컴퓨터 배경화면으로 사용해야 할 것 같은 아름다운 배경과의 조화까지!!

 

독일 북극 AWIPEV기지

 

 남극과의 계절이 반대인 북극은 극야(겨울철 고위도 지방이나 극점 지방에서 추분부터 춘분사이에 오랫동안 해가 뜨지 않는 현상) 기간으로 야간 사진인 점이 눈에 띈다. 또한, 하계 연구원들 없이 최소한의 상주 인력만이 조촐하게 기지를 지키고 있기에 그들의 모습이 참으로 오붓해보인다.

 

프랑스 남극 콘코디아기지

 

 요새처럼 웅장한 건물에 매우 튼튼해보이는 설상차와 자유롭게 날 수 있는 비행기까지, 시설과 장비를 과시하는 듯한 위용이 느껴진다.

 

 세종과학기지와 더불어 4개의 외국 기지 새해 축전을 소개하였다. 축전 속에 그들만의 환경과 문화가 녹아 들어간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문명의 세계로 부터 고립된 곳에서 묵묵히 과학기술의 번영과 발전을 위해 노력하는 이들에게, 재치있고 시각적인 축전을 만드는 일 역시 훌륭한 여가 거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축전 문화는 새해맞이 기간뿐만 아니라 밤이 가장 길고, 낮의 길이가 길어지기 시작하는(극야기간에 실제로 느낄수는 없다.) 동짓날에도 안부를 묻고 안녕을 기원하는 의미의 축전을 주고받는다. 그 때 또다시 각국 기지의 동지 축전을 소개하도록 하겠다.

 

P.S. 여러분이 궁금해하는 남극의 이야기가 있다면 의견 전해주세요!! 가능한 선에서 소개드려 보겠습니다 :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