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4. 2. 06:38ㆍLife/2020
2020년 4월 1일.
한국보다 12시간 늦게(UTC-3) 4월을 맞이하였다. 남극에 오기 전 군대 생활을 떠올리며 시간이 정말 안 갈 것 같았는데, 생각보다 시간이 너무 훌쩍 가버리는 것 같아서 놀랍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다시 문명사회로 돌아갈 준비를 해야 한다는 경각심이 들기도 한다. 무려 13개월간 문명을 떠나 지낸다는 것이 참 두려웠는데, 벌써 3분의 1이 지났다니 앞으로 더욱 힘내서 즐겁고 안전하게 마무리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
이번에 연구소에서 극지사진 콘테스트를 개최하였는데, 블로그의 첫 일상 포스팅으로 이때 출품한 사진을 소개하고자 한다. 사진 실력이 좋지 않아서 수상 하게 되리라는 생각은 안 하고 있지만 속으로는 내심 기대하고 있다. 사진 공모는 자연환경 / 연구활동 / 인프라 / 스냅 총 4개 분야로 하나라도 얻어걸리길 바라는 마음으로 23개 사진을 출품하였는데, 이 중 마음에 드는 사진 몇 장을 포스팅한다.
새해 첫날, 새해의 각오를 다짐하는 의미로 떠난 트래킹에서 발견한 아름다운 모양의 유빙이다. 지구온난화를 실감하라는 듯이 소만(Cove) 빙벽에서는 수시로 굉음과 함께 유빙들이 떨어져 나온다. 유빙의 모양은 가지 각색이지만 이렇게 가운데가 구멍이 뚫려있는 모습은 처음 보기에 굉장히 새롭고 아름다웠다.
기지 바로 옆에 뻗어 나온 세종곶(Cape Sejong)에서 노을 사진을 찍던 중 갑작스레 장노출 사진을 찍고 싶어서 찍은 사진이다. 혼자 셔터 누르고 달려가서 하트까지 그리느라.. 마음에 드는 예쁜 하트가 나올 때까지 수차례의 원맨쇼를 반복했다. 사진의 제목은 1만 7천여 km 떨어진 고국에서 기다리고 있을 연구대원의 가족들에게 바치는 마음의 의미로 지었다.
남극의 환경상 펭귄, 해표, 물개 등을 많이 보지만, 그들의 식사 시간을 마주하기는 어려운 것 같다. 우리 기지 반대편 포터 소만을 가서 야외 작업을 하던 중 물고기를 잡은 물개를 보고 급하게 셔터를 눌렀다. 뒤에 보이는 굉장히 신기한 모양의 산이 삼형제봉이라 불리는 산이고 좌측에는 아르헨티나의 남극 기지중 하나인 깔리니 기지가 위치해 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바다를 가로지르는 보트에는 아르헨티나의 네트워크 엔지니어인 동갑내기 친구가 타고 있었다고 한다. 언젠가 한번 그 친구와의 이야기를 다뤄보도록 하겠다.
1988년에 구축된 남극 세종 과학기지의 첫 번째 건물을 지금은 개조해서 역사관으로 사용 중이다. 역사관에는 지난 삼십여 년간의 월동연구대 사진이 걸려있는데, 칠레 공군에서 찾아온 군인이 1차 월동연구대 사진 뒤에서 엄지를 올리고 있는 모습니다. 남극에서 직접 지내보니 32년 전 대한민국의 첫 번째 남극 과학기지를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꿋꿋이 운영해나간 선배 대원들이 너무 자랑스럽다.
위 두장의 사진은 모두 남극의 상징 펭귄의 모습이다. 젠투펭귄이라는 종으로 황제펭귄과 킹펭귄에 이어 펭귄중에는 세번째로 큰 종으로 키는 51cm에서 90cm이다. 주변에 살고 있는 아델리 펭귄이나 턱끈펭귄과는 달리 정말 온순한 성격을 가지고 있어서, 가까이 다가가도 공격적인 성향을 보이지는 않는다. 첫번째 사진은 짝사랑 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마치 고백할 타이밍을 놓치고 좋아하는 상대를 그저 지켜만 보는 모습처럼 보인다. 물론 실제로는 이미 짝짓기 철이 지났을 시기이고 그냥 옹기종기 모여 산책을 다니는 중일 것이다. 아래의 사진은 갑자기 밀려온 유빙에 이도 저도 못하는 펭귄을 담았는데 가득한 유빙과 펭귄의 모습이 너무 조화로워서 꼭 수상했으면 하는 사진이다.
이번 포스팅에서는 이렇게 여섯장의 사진만 간단히 소개하고, 남극에서의 일상과 함께 더욱 많은 사진으로 Life/2020 카테고리를 가득 채워봐야겠다. 지난달부터 연구소 홈페이지에 우리 기지의 웹진인 「눈나라 얼음나라」도 연재중인데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P.S. 2021 남극과학기지(세종/장보고) 월동연구대를 모집 중입니다. 관심있으신분은 극지연구소 채용공고를 참고해주세요. 혹시나 "전자통신" 직무를 희망하시는 분은 잘 준비해서 저랑 12월에 바톤터치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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