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의 필드 활동 - 남극 킹조지섬(KING GEORGE ISLAND)

2020. 5. 11. 22:53Life/2020

 한동안 너무 바빠서 거의 한 달 만에 올리는 포스팅이다. 5월 7일과 8일 양일간 아주 오랜만에 필드 활동을 다녀왔다.  7일에는 기지 건너편에 있는 위버반도에 연구 샘플 채집 지원을, 8일에는 바톤반도 나비봉에 있는 무선 중계기를 점검하러 다녀왔다.

 

바톤반도 지도 - 극지연구소

 

 사진은 남극 킹조지섬의 지도 중 일부이다. 세종과학기지는 바톤반도에 위치해 있고, 바톤반도에서 마리안 소만 건너편에 위치한 반도가 위버반도이다. 위버반도를 가기 위해서는 해상으로 이동을 하여야 한다. 육상으로도 연결이 되어있기는 하지만 마리안 소만 빙벽과 빙원은 지구온난화로 인해 빠르게 녹아내리고 있기 때문에 매우 위험한 관계로 통로로 이용할 수 없다.

 

 나비봉은 같은 반도내에 있고 빙하가 아닌 땅이 노출된 지역으로 연결되어 있어서 육상으로 이동할 수 있다. 다른 연구대원을 돕기 위해 주로 가던 지역보다는 비교적 가까운 편이라 3시간 정도면 기지와 왕복이 가능한 거리이다.

 

2020년 5월 7일 - 위버반도

 

 내가 근무하는 통신실 창문에서는 항상 위버반도를 보고 있는데, 산세가 너무 아름다워서 꼭 한번 가보고 싶었던 곳이다. 아침 회의시간에 생물 연구를 담당하는 연구반장님께서 활동이 예정되어 있다고 하여 연구 보조로 지원하였다.

 

위버반도 빙원의 가장자리

 

 처음 발을 디딘 위버반도는 바로 옆임에도 불구하고 바톤반도와 전혀 다른 환경이었다. 반도 자체를 빙원이 뒤덮고 있는 점과 산세가 매우 험한 부분이 와 닿았다. 어디선가 남극의 빙원 위에 돌이 떨어져 있으면 그것은 운석이라고 그랬는데, 사진에 보이는 암석들은 모두 왼쪽 산의 절벽에서 낙석으로 인해 떨어진 것이다. 필드 활동 간에(특히 산악활동시) 항상 낙석에 주의를 기울이며 활동을 하는데, 이 날은 눈으로 실감되는 풍경에 더욱 주의를 기울였다.

 

크레바스 (Crevasse)

 

 여름을 보내고 아직 눈이 쌓이기 전이라 크레바스나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 빙하를 가까이에서 목격할 수 있었다. 마치 영화처럼 수 십미터의 깊이는 아니지만, 충분히 위협적인 모습이었다. 안전한 활동을 위해 땅이 드러난 부분에서만 활동을 하였으나, 이러한 풍경과 험한 산세로 지금까지 가본 필드 중에 가장 위험했다고 생각한다.

 

남극의 식물

 

 전공 분야가 아니라 이 곳의 생태에 관해서는 잘 모르지만 예쁜 식물을 발견하였다. 이끼에 기생해서 사는 느낌인데 색의 조화가 아름다웠다. 남극에 오기 전까지만 해도 남극에도 식물이 사는줄은 몰랐다. 물론 한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꽃이나 나무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펭귄들 마저 떠난 지금은 이러한 식물들이 함께 있다는 위안이 든다. 

 

 

 산에서 안전하게 활동을 마치고 내려와서, 안도의 미소를 지을 수 밖에 없었다. 나는 겁이 매우 많은 성격이다. 일반적으로 조심하는 성격을 넘어서서 정말 겁이 많기 때문에, 이날 하루 종일 긴장한 채로 부들부들 떨었다. 그렇게 계속 겁에 질려있다가 산에서 내려왔을 때는 너무 기뻤다. 내려와서도 몇 가지 활동을 하다가 기지로 복귀를 하였는데, 너무 긴장한 채로 산행을 한 탓인지 극심한 근육통과 함께 허벅지가 부어 올라서 며칠간(사실 글을 쓰는 지금도...) 힘들었다.

 

 

2020년 5월 8일 - 바톤반도 나비봉

 

 나비봉에는 연구 활동이 아닌 전자·통신 담당으로의 업무를 위해서 다녀왔다. 기지에서는 VHF 무전기를 통해 개인 혹은 기지 간에 교신을 하는데, 반도 내의 많은 봉우리와 절벽으로 무선 통달 범위가 좁아, 이를 확대하기 위해 나비봉에 무선 중계기를 운용 중에 있다. 바람이 매우 거센 지역이라 파손의 우려 등의 이유로 주기적으로 점검을 시행한다.

 

 

 바로 하루전에 위버반도에서 얻은 근육통으로 평소와 달리 조금 힘겹게 올라갔다. 정상에 올라섰을 때 아름다운 풍경에 힘든 마음은 씻은 듯이 날아갔다. 사진은 나비봉에서 포터소만 방향으로 촬영한 드론 사진인데, 포터반도의 삼형제봉과 바다에 떠내려온 빙산을 볼 수 있었다. 사진을 촬영하고 몇 분 후에 먼바다에서 해무가 걷히며 남극 대륙에서 떨어져 나온 항공모함만큼 큰 빙산을 볼 수 있었는데, 눈으로 감상하느라 사진은 찍지 못했다.

 

 

 오랜만에 하늘도 맑고 바람도 불지 않았다. 한국이었다면 드라이브 가기 좋은 그런 날이었다. 중계기가 단순한 편이라 점검은 오래걸리지 않았다. 땀이 식으면서 추웠기에 서둘러서 내려왔다. 이틀 동안 필드 활동을 연이어 다녀오니 몸은 조금 고된 편이었지만, 오랜만의 야외 활동에 삶에 생기가 더욱 충전되었다. 앞으로 깊은 겨울로 접어들며 야외에서 활동하기 좋은 날은 없을 예정이라 매우 아쉽다.

 

 최근에는 밤이 점점 길어지며 수면 장애를 겪고 있다. 인공태양과 멜라토닌 처방을 통해 최대한 라이프 사이클을 맞추어 보고자 노력중이다. 대륙 반대편 장보고과학기지에서는 지난주부터 해가 하루 종일 뜨지 않는 극야가 시작되었다고 하는데, 그곳 대원들은 더욱 심한 증상일 것 같아서 걱정이 된다. 양 기지 연구대원들 모두 건강하게 겨울을 보내고 한국에서 환한 모습으로 다시 만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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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H22020.07.20 19:40

    남극에서의 삶이 궁금하게 만드는 글이네요..!
    응원합니다!